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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당 vs 파리바게트

사진출처 : 오마이뉴스 

[취재일기] ‘이화당’ 빵집 vs 파리바게뜨

[중앙일보] 입력 2012.01.25 00:00 / 수정 2012.01.25 00:00

김호정
경제부문 기자
한 네티즌은 17일 트위터에 “잔인한 장면”이라고 썼다. 서울 대신동 연세대 동문회관 옆의 ‘파란 간판 빵집’ 얘기다. 30년 넘은 명물 빵집 ‘이화당’ 바로 옆 건물에 파리바게뜨가 26일 문을 연다.

33㎡(약 10평) 남짓한 ‘이화당’은 1979년 개업했다. 연세대·이화여대 학생과 교수, 세브란스병원 직원들이 단골이다. 새로 여는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은 28평 규모의 세련되고 깔끔한 카페형 매장이다.

쉽게 보면 대기업의 횡포다. ‘이화당’은 70대 노부부와 아들이 직접 빵을 구워 판다. 파리바게뜨의 국내 매장은 8월에 3000개를 넘겼다. 네티즌과 오래된 단골이 ‘이화당’에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다.

실제로 설 연휴를 앞둔 이곳엔 “힘내라”며 빵을 사러 온 고객이 눈에 띄었다. 또 일부 네티즌은 ‘프랜차이즈 빵집 불매’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화당’ 주인 박성은(74)씨도 “저쪽은 빵값도 싸고 매장도 깔끔하니 아무래도 많이 가지 않겠나”라며 걱정이다. 그는 서대문구청에 “공사 현장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우리 영업에 방해된다”며 민원도 냈다.

 하지만 파리바게뜨 신촌연대점의 점주인 김모(43)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중소 건설업체에 11년을 다니다 지난해 12월 정리해고됐다. 대출받은 돈과 퇴직금을 합쳐 2억원으로 점포를 얻었다. 그는 “40군데 넘게 점포 자리를 보러 다녔지만 이 돈으로 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다행히 이 자리엔 권리금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근처에 ‘이화당’이 있다는 걸 알고 망설였지만 주인 부부가 ‘이화당’ 건물의 소유주여서 최소한 생계 문제에선 자유롭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화당’이 있는 2층 건물은 노부부가 소유하고 있으며 약국이 임차해 들어와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횡포를 좌시해서도 안 되지만 덮어놓고 하는 마녀사냥도 곤란하다. ‘동네 빵집 지키기’가 ‘자영업자 죽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이화당’의 박성은씨는 “빵 맛만큼은 절대 지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동네 빵집이 30년 넘게 쌓은 실력을 자생력 삼을 수 있을지 지켜볼 차례다.

Video

clarayoon:

Amazing video.

Quote
"sigh…"


답답하고 지루하다.
아파트 빼곡한 이동네도.
독립문-약수-돌곶이도.
새로운 작업들도 이전것들의 재생산으로만 느껴진다.
어떡하면 좋지. 이 무기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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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관한 기억 part2 

2.

안과를 다녀왔다. 렌즈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더 늦기 전에 렌즈 끼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검사들만 잔뜩 하고 정작 렌즈는 맞추지 못했다. 특수한 나의 눈에는 특별한 검사, 특별한 렌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놈의 자가 나올 때마다 돈은 따블, 따따블이 되어 늘어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보태 수술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원시-근시의 짝짝이 눈은 수술을 한다 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안경을 써야한다는 것.

돈이 많아져서 특수 렌즈를 매달 살 수 있다면, 과학기술이 좋아져서 수술이 더 발전한다면 등의 기약 없는 가정을 제외하고 현재만을 생각했을 때 나는 앞으로 쭈욱 안경을 쓰게 될 것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이전엔 몰랐던 안경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콧등과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는 그 무게. 얼굴 삼면을 조여 오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플라스틱과 유리알 g 수 이상의 무엇이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백미러를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다. 이것은 익숙한 나의 일요일 아침 풍경이었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일년전에도 오년전에도 십년전에도 그랬고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 시절의 일요일에도 나는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어딘가를 뛰어갔을 것이다어느 날엔 그 아침이 좋았고 어떤 날엔 그 정신없음이 짜증났다. 그렇게 좋고 싫음을 반복하면서 2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별일이 없는 한 나는 평생 일요일 아침 헐레벌떡 뛰어(때때로는 여유롭게 걸으며교회를 갈 것이다.

그 날 일요일 아침은 뭔가 이상했다. 이 정신없는 일요일 아침이 지겨워졌다하지만 지겨움은 이전에도 한 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었다. 그 실증은 이전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귀찮다거나 분주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인을 찾아 희미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갔을 때 나는 처음 안경을 쓰던 그 날을 생각하게 되었다잘 어울린다며 거울을 보며 으쓱했던 그날의 안경은 굴레가 되어 내 삶에 씌워져 있었다나는 인생의 남은 시간 속에서 나와 함께 묶일, 떨어지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경신앙, 조은혜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야 할 남은 시간들.

사실 부담감 보다 더 컸던 것은 절망감이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이미 정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찾아오는 좌절.

나는 내일과 영원의 개념을 알아버린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웠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올 것을 모르고 오늘만을 살았더라면 이런 부담감도 괴로움도 없었을텐데. 지나간 과거를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며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갔을텐데. 미지의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정해진 미래로 부터 자유해지고 싶었다. 옳다 여겨지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의 당위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무게에 못 이겨 안경을 내 팽겨 쳤다. 피부는 바리케이드 없이 만나는 바람을 깊이 빨아들였다.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세상이 무한한 우주로 확장되자 나는 비로소 세상이 넓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얼굴 곳곳에 퍼지는 바람과 공기의 만짐도 잠시, 시야가 마구 뒤틀렸다.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보았던 이상한 요술거울처럼 세상은 마구 울렁이며 일그러졌다. 균형을 잃은 두 눈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낯선 세상에 당황하여 생난리를 쳤다. 자유는 고사하고 안경 없는 나는 그저 장님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 볼 수 없었고 책도 그림도 영화도 볼 수 없었다. 자유를 찾아 떠난 곳에는 또 다른 아니 그 이전보다 더 질기고 강한 올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읽던 조르바가 생각났다. 결혼도 제도도 종교도 다 거부하고 바람처럼 살아가던 그가 스치듯 던진 말이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 아무리 자유롭다 한들 결국 그도 땅의 산물이었고 그 한계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유. 무엇이 자유일까.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운명공동체처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 그 무엇을 알면, 그것을 끊어내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부합하는 실제가 존재하긴 한 걸까. 도대체 누가 이 개념을 만들었으며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나는 울렁이는 세상 속에서 길 잃은 고아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