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안과를 다녀왔다. 렌즈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더 늦기 전에 렌즈 끼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검사들만 잔뜩 하고 정작 렌즈는 맞추지 못했다. 특수한 나의 눈에는 특별한 검사, 특별한 렌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놈의 ‘특’자가 나올 때마다 돈은 따블, 따따블이 되어 늘어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보태 수술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원시-근시의 짝짝이 눈은 수술을 한다 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안경을 써야한다는 것.
돈이 많아져서 특수 렌즈를 매달 살 수 있다면, 과학기술이 좋아져서 수술이 더 발전한다면 등의 기약 없는 가정을 제외하고 현재만을 생각했을 때 나는 앞으로 쭈욱 안경을 쓰게 될 것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이전엔 몰랐던 안경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콧등과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는 그 무게. 얼굴 삼면을 조여 오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플라스틱과 유리알 g 수 이상의 무엇이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백미러를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다. 이것은 익숙한 나의 일요일 아침 풍경이었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일년전에도 오년전에도 십년전에도 그랬고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 시절의 일요일에도 나는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어딘가를 뛰어갔을 것이다. 어느 날엔 그 아침이 좋았고 어떤 날엔 그 정신없음이 짜증났다. 그렇게 좋고 싫음을 반복하면서 2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별일이 없는 한 나는 평생 일요일 아침 헐레벌떡 뛰어(때때로는 여유롭게 걸으며) 교회를 갈 것이다.
그 날 일요일 아침은 뭔가 이상했다. 이 정신없는 일요일 아침이 지겨워졌다. 하지만 지겨움은 이전에도 한 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었다. 그 실증은 이전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귀찮다거나 분주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인을 찾아 희미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갔을 때 나는 처음 안경을 쓰던 그 날을 생각하게 되었다. 잘 어울린다며 거울을 보며 으쓱했던 그날의 안경은 굴레가 되어 내 삶에 씌워져 있었다. 나는 인생의 남은 시간 속에서 나와 함께 묶일, 떨어지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경, 신앙, 조은혜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야 할 남은 시간들.
사실 부담감 보다 더 컸던 것은 절망감이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이미 정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찾아오는 좌절.
나는 내일과 영원의 개념을 알아버린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웠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올 것을 모르고 오늘만을 살았더라면 이런 부담감도 괴로움도 없었을텐데. 지나간 과거를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며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갔을텐데. 미지의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정해진 미래로 부터 자유해지고 싶었다. 옳다 여겨지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의 당위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무게에 못 이겨 안경을 내 팽겨 쳤다. 피부는 바리케이드 없이 만나는 바람을 깊이 빨아들였다.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세상이 무한한 우주로 확장되자 나는 비로소 세상이 넓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얼굴 곳곳에 퍼지는 바람과 공기의 만짐도 잠시, 시야가 마구 뒤틀렸다.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보았던 이상한 요술거울처럼 세상은 마구 울렁이며 일그러졌다. 균형을 잃은 두 눈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낯선 세상에 당황하여 생난리를 쳤다. 자유는 고사하고 안경 없는 나는 그저 장님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 볼 수 없었고 책도 그림도 영화도 볼 수 없었다. 자유를 찾아 떠난 곳에는 또 다른 아니 그 이전보다 더 질기고 강한 올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읽던 조르바가 생각났다. 결혼도 제도도 종교도 다 거부하고 바람처럼 살아가던 그가 스치듯 던진 말이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 아무리 자유롭다 한들 결국 그도 땅의 산물이었고 그 한계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유. 무엇이 자유일까.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운명공동체처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 그 무엇을 알면, 그것을 끊어내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부합하는 실제가 존재하긴 한 걸까. 도대체 누가 이 개념을 만들었으며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나는 울렁이는 세상 속에서 길 잃은 고아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